독도일지 제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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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송
기사입력 2024.02.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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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발족한 민병대에서 민간 수비대원 20명을 파견해 합세했다. 하자진(河自鎭)은 갓 결혼하여 두 살 난 딸 기자가 있었다.

 

울릉군민도 아니면서 독도라는 말 하나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꼭 지켜내야 할 땅이라는 생각 하나로, 본토 포항에 살면서 무조건 울릉 상이군인회에 들어와 독도 의용수비대원이 되었다.

 

아내와 딸을 울릉도에 남겨놓고 독도에 들어온 지 1년만이었다. 대원이 30명으로 늘어나면서 몇몇 대원들이 잠시 교대를 위해 삼사호에 올랐다. 정원도(鄭元道) 황영문(黃永文)도 동행했다.

 

배가 독도를 출항한 후 갑자기 운무가 짙어지던 바다는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배는 기관 고장까지 일으켜 바다를 표류하기 시작했다.

 

추위와 배고픔과 공포 속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죽음과 싸웠다. 하자진은 아기와 아내를 생각하며 통곡을 바다에 쏟아 부어 대원들의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했다. 92일 정부는 독도 무장화를 천명하고도 독도에는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군이 한국영토를 영공에서 방위하기 위해 설정,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한국방공식별구역도(KADIZ)

 

 1948630일 미 공군이 독도 상공에서 포격연습을 한 일이 있었다. 한국 전쟁기간에 독도가 미 공군연습기지로 선정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빌미로 연합군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간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정부가 항의 한바 미국 공군 사령관은독도는 미국 공군 연습기지에서 제외되었다는 회답과 함께 한국 방공식별구역 안에 독도를 포함시켜 한국 영토를 방어하고 있다는 회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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